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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비대면 교회와 성도의 친교

  • KIMMSN
  • 2023년 8월 31일
  • 11분 분량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

목사 역시 한번 목사이면 영원한 목사인것 같아요

한번 목사라는 칭호가 붙으면 죽을때까지 따라 다니니까요

그렇지만 목사는 은퇴가 있어도 해병은 은퇴가 없다고 하죠?

해병과 목사의 소속감과 소명감 그리고 사명감의 최고치가 영원함으로 이어지는것 같아요

해병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고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죠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자기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은 제외하구요)

그런 의미에서 해병과 목사는 많이 비슷하죠?

그런데 목사는 해병과 다른 점이 있더군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해병대는 언제 어디서나 다같은 해병대라는 것만으로 하나가 되는데

교회는 길 건너편 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특히 교단이 다를 땐 더더욱 그렇지요

길 건너편 교회가 경쟁 대상이기도 하고 불우 이웃 돕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구요 한 교회에서 한 주님을 섬기다가 둘로 갈라져 나가면

갈라져 나간 사람들이 같은 동네에 교회를 개척하면 두 교회 사이는 참으로 안좋은 관계가 되지요

두 교회 목사가 모두 같은 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의 한 몸의 지체로써 같은 몸에 속해도 서로 외면하는 관계가 되지요

(물론 성도들은 그렇지 않지만…)

분명히 교회의 가르침에는 모든 교회가 한 몸의 지체처럼 서로 유기적인 관계라고 하지만

이 교회의 아픔이 저 교회의 아픔은 아니더라구요

각각의 교회가 마치 하나의 독림된 예수님 같아요

지방 자치 단체나 연방 체제같은 느낌이 들지요

손은 독립적으로 손이 원하는 것을 하고

발도 독립적으로 발이 원하는 것을 하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모든 교회가 한분 예수님의 지체이며 모든 성도들은 각 지체의 일부분이지요

신약 성경 로마서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요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자니라” (로마서 1:6)

이 말씀은 교회 목회자들에게하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해병대 비유한다면

해병대가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그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해병이란 뜻이지요

부르심을 받은자를 어려운 말로 소명을 받은자라고 표현 할 수 있겠지요

교회에서 소명을 받은자가 누구죠?

모든 성도들이 소명을 받은자이죠

목사님을 비롯한 직분자들만이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성도 모든 사람이 소명을 받은 사람이지요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건 가요?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직분자로 소명을 받은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로 소명을 받은거죠

예를들면 목수의 연장 통에 망치, 톱, 뻰찌, 줄자 등등이 모두 목수의 것, 연장, 도구로 부르심을 받아 연장 통안에 놓여 있는 거죠

그 목수의 연장 통에 있는 도구들이 무엇을 위해 있는 거죠?

각자 맡은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목수의 쓰임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물론 이 표현에 동의하지 않으시겠죠

만일 사람들이 망치나 톱처럼 발이 없어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쉽게 이해가 되지만

발이 있기에 사람은 스스로 맡은 책임을 다 하려고 움직이죠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비난도 하구요

성경은 사람을 질그릇이나 가구 혹은 안개에 비유하고있다는걸 잘 아시지요?

안개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비유하지만

질그릇과 가구의 공통점은 누군가에게 쓰임을 받아야 한다는거죠

망치와 톱이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있는것 아니잖아요

연장통의 도구들은 사나 죽으나 목수를 위해 있는 거죠

이와같이 사람도 주님의 쓰임을 위해 존제하는 겁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시겠지요

주님은 나를 목회자로 쓰시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목회를 한다고…

이것은 마치 망치가 “나는 망치로 부름 받았기에 내가 열심히 못을 박겠다”고 하는 거죠

틀리진 않았지만 망치가 여기저기 다니며 못을 박고 다니면 안되잖아요

목수의 연장 안에 담겨 있거나 목수의 손에 들려 있는것만으로 만족하시는 편이 좋을듯 싶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것 이로라

이 성경 말씀대로 한다면

누구든지 자기 교회를 위해 사는 사람도 자기 교회를 위해 죽는

사람도 없는거죠?

교회가 예수님이 아니니까요

이 교회 저 교회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주를 위해서 살고 주를 위해 죽는 주님의 소유라는 뜻이죠

성도가 된다는 의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 자신의 가정과 소유까지 주님의 것으로 등기 이전 되었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주님께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혹은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라고 주체성을 발휘하지 말라는 거죠

교회 신자가 된다는 것은 삶의 방향과 가치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주인의 위치에 있지 않겠다는 뜻이죠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주인의 위치에서 살려면 교회의 신자가 될 수 없는 거죠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한것 아닌가요?

일반 성도 뿐 아니라 목사나 장로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교회도 혹은 길 건너편 교회도 모두 주인은 예수님이지요

자기 교회를 주장하려면 예수님과 정면으로 도전하게 되요

혹시 불교에 가시면 자기 절이라고 주장하는 스님이 있을지 모르죠 (잘 모르겠지만요)

오늘날의 교회 분위이기는 교회가 주님의 것이기 보다는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교인들, 공동의회의 것이 되었죠

머리에 의해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팔과 다리가 힘을 합쳐 머리를 움직이는 그런 민주주의 말이죠

물론 어떤 교회는 당회의 것처럼 운영하기도 하지만요

그것도 그나마 괜찮은거죠

목사님 한 분이 왕권(?)을 가지고 맘대로 하는곳도 있으니까요

어떤 부자 성도가 거액의 십일조를 이 교회에 내고 출석은 저 교회로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헌금을 받는 교회에서는 그 성도를 참 좋아 하겠죠

그러나 반대편의 교회에서는 밥만 축내는 그 성도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 할까요?

허지만 주님의 입장에서 보면

십일조나 헌금을 어느 교회에 바치든 주님에게 드리는 것이니까 마찬가지 아닐까요?

밥만 축낸다는 말이 나왔으니 생각이 나네요

80년 중반쯤에 미국에 영어 언어 연수하러 오는 학생들이 엄청 많았을때 대학가 근처 한인 교회들의 반응이 참 재밋었지요

젊은 학생들이 몰려 오자 교회는 활기가 났지만

교회의 어떤 분들은 밥만 먹고 헌금은 안하는 어학 연수생들을 향해 눈총을 쐈지요

50미리 켈리버 기관총으로 말이죠

제가 보기엔 교회에서 직분이 높으신 분 일수록 눈총을 많이 쏘셨던걸로 기억해요

허지만 대부분의 일반 성도들은 그 젊은 학생들을 참 따뜻하게 사랑해 주셨지요

언어 연수때문에 잠시 교회를 드나들었던 학생들도 주님의 몸의 한 지체의 일부분임이 확실하죠?

일반적으로 교회의 목사가 되면, 특히 개척 교회에서는

교회의 부흥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지요

열심있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자신들의 자녀들까지도 교회의 부흥을 위해 희생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개척교회가 대형교회가 되어 버리면 그 오리지널 멤버의 텃세란 하나님도 감당이 못하실 정도가 되는건 충분이 이해가 가죠?

교회가 어떤 계기로 갑자기 부흥하게 되면

이웃 교회의 어려움을 볼 눈이 없어지죠

길 건너편의 부흥하지 못하는교회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성도님이나 목사님을 보신적 있나요?

교회 목사님들과 직분자들 그리고 교인들이 지상의 모든 교회가 주님의 하나의 몸이라고 진짜로 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날에는 믿지 않는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 와서 부흥하는 것보다 다른 교회 신자들이 특정 교회로 몰려 들어서 부흥하는것처럼 보일때가 많지요

그래서 어떤 지역에서 한 교회가 커지면 다른 교회는 교인이 줄어 들고 심지어는 교회가 문을 닫는 일도 일어나지요

교회만 이런 현상이 있는건 아니지요

미국 전역에 작은 하드웨어 스토어 (철물점)나 작은 그로서리 스토어 (동네 수퍼마켓) 등이 동네 안에 여럿이 있었지요

그런데 대형 스토어가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1976년에 Price Club이 그리고 1980년 부터는 Home Depot, 1983년에는 Price Club이 Costco로 바뀌어 미국 전체 시장의 판도를 대형화로 몰고 갔지요

비디오를 대여해주는 대형 Blockbuster 비디오 상점이 들어서자 다 작은 비디오 대여 업체들은 문을 닫았지요

이제 Netflex가 나오면서 대형 블럭버스터까지도 문을 닫았지요

이제 세상은 대형 상점으로 가면서 동시에 인터넷으로 가는 추세인것 같아요

교회 역시 대형 교회가 신뢰받고 그 대형 교회로부터 생산되는 많은 이익때문에 사람들은 대형 교회를 사랑했지요

대형교회에는 정치적, 경제적, 학문적인 인재들이 가득하며 풍성한 제정으로 뭐든 다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교회도 인터넷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지요

교회가 흐르는 세상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 가지는 못하잖아요

교회 음악은 리듬뿐 아니라 개념까지도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래의 교회와 목사의 사명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요?

오늘날에는 우리의 삶 전체가 손 안에 든 전화기 하나로 거의 모든것이 해결 되지 않나요?

원하는 음악을 듣기 우해 음반이나 CD를 사러 가는 세월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 아닌가요?

영화를 보기위해 비디오나 CD를 빌리던 것도 추억이 되었잖아요

넷플렉스같은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는 세월이 되었지요

코로나로 인해 학교와 교회 역시 인터넷 온라인의 비대면이 이상한것이 아니잖아요

인터넷 강의나 설교는 이제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 와 자리를 잡았지요

이제 교회를 선택할때 인터넷으로 방문하지 못하면 그 교회는 선택의 대상에서 제외 되지 않나요?

설교가 어떤지,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교회의 목표가 무엇인지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교회를 선택하는 사람은 그 교회가 나에게 얼마나 유익을 제공하는지 계산해보고 결정하잖아요

회의 참석도 인터넷 화상으로 헌금도 인터넷 온라인으로 하지 않나요?

넷플랙스처럼 화면에 여러 교회가 나오면 맘에 드는 교회를 클릭해서 인네넷으로 비대면 가상 예배를 즐길 수 있잖아요

물론 교회를 직접가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구요

코로나 이전에는 비대면 예배를 경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 만일 코로나보다 강한 전염병이 유행한다면 비대면 교회 예배가 거의 정상적인 예배로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설교자도 아이페드를 들고 설교하고, 설교를 듣는 사람들도 콤퓨터나 전화기로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잖아요

인터넷을 통해서 비대면 예배, 비대면 강의, 비대면 장례식, 비대면 결혼식까지 경험 해보지 않았나요?

이제 우리는 콤퓨터 화면이나 실제 만남이나 별 다름 없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조금 답답한건 있지만…

코로나가 이런 인터넷 가상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 버린거죠

학교도 교회도 이제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은 변했지요

인터넷 세상으로 말입니다

인터넷이 교회에 깊이 침투하기 전에는 프로젝터로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대형 스크린에 비추어 주었지요

그 결과 사람들은 교회 올때 성경과 찬송을 들고 오지 않아도 되었지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예배가 시작되면서 전화기를 들고 예배에 참석하고 전화기로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보는 일도 평범한 일이 되었지요

연세드신 분까지 콤퓨터나 전화기로 비대면 예배에 쉽게 적응하게 되었잖아요

만일 코로나 보다 더 심한 문제가 계속 일어난다면 언제가는 교인들이 모일 대형 건물은 점차 사라지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예배의 시청률을 높히기 위해서 교회는 방송 설비로 가득찬 방송국처럼 변하지 않을까요?

물론 TV방송국 안에도 시청자들이 참석할 수 있는 공간이 있듯이 교회에도 작은 예배당에서 시청자들이 참석 할 수도록 방을 마련 하겠지요

계속 발달하는 인터넷 기술로 인해 언젠가는

인공 지능이 사람들의 감정을 잘 공감시켜 줄 설교 자료들을 모두 준비해 준다면 명설교가 나오지 않을까요?

시대가 이쯤 되면 신학교에서는 커리큘럼에 콤퓨터 작동 기술과 방송 기술이 가장 중요한 과목이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직원은 설교자와 방송 설비자가 되겠지요

목회자는 자신이 속한 교단의 신학에 맞도록 지능 콤퓨터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설교 자료를 찾는 일 아닐까요?

허지만 AI지능 콤퓨터가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 주진 않기 때문에 목사 자신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면 콤퓨터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 자료를 찾아 주겠지요

성도들은 가장 높은 설교 조회수를 실시간으로 알수 있겠지요?

설교 조회수가 곧 그 설교자의 교회 교인이 되니까요

물론 헌금도 교회 계좌번호로 자동 이체 되구요

모든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인터넷 상의 가상 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지요

우리들의 눈 앞에 현실로 금방 닥칠 상황일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식으로

한번 목사면 영원한 목사라는 말이 계속 될까요?

인터넷 세상에서 목사의 사명감이란 어떤 것이 될까요?

누구든지 유투버가 될 수 있듯이 가상 인터넷 설교자가 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교회에서 말썽 많은 제직회나 공동의회도 없을테니 얼마나 쉽습니까?

교단끼리의 문제도 안 생길 것같군요

장로가 되려고 엄청난 돈을 드릴 필요도 없겠죠?

교회 주차장 때문에 교회의 이웃과 분쟁도 없구요

자기들 동네에 교회가 들어 오지 못하게 싸우는 일도 없을꺼구요

이런 시대가 오면 개척 교회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주정헌금, 감사헌금, 헌신예배헌금, 십일조, 건축헌금 등등 헌금 봉투도 사라지고 교회 버스도 사라지겠죠?

기존에 있던 교회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모두 없어질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또한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에 교회가 노출 되지 않으니까 좋겠지요?

예배를 참석하는 시간 역시 교인 스스로 정해서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겠군요

가장 아쉬운 점은 성도들의 친교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이것은 쉬운 점이 아니라 인터넷 교회가 교회로써의 기능을 못하는 결정적인 단점이지요

왜냐하면 예배와 성도들과의 친교는 서로 뗄 수 없으니까요

시간이 있으시면 신명기 14장 22절부터를 꼭 한번 읽어 보세요

교회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22,23절):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교회에서 성도들이 드린 십일조를 함께 먹고 마셔본 일이 있나요?

십일조를 먹어야 하는 이유는 십일조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나무가 되어서 자신을 우리에게 먹게 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내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시잖아요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까요

예수님의 실과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것이기에 생명이 없는거죠

이것을 십일조로 설명하고 있는거예요

구약 시대에는 성전이 각 지방마다 여러게 있지 않고 전국에 오직 하나 밖에 없었지요

성전이 예수님의 모형이니 예수님이 한 분이기 때문에 성전이 여러개가 있으면 않되죠

성전과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은 십일조의 곡식과 동물을 성전까지 운반하기 어렵겠지요?

그러니 당연히 돈으로 바꾸어 가서 성전 근쳐에서 돈으로 십일조 드릴 것을 사면 되잖아요

성전에 관계되는 사람은 이것을 이용해서 성전을 아예 물건 파는 장소로 만들어 버렸다가 예수님한테 혼났지요

아마 바가지를 씌웠나봐요 예수님이 강도의 소굴이라고 했으니 말이죠

물론 오늘날에는 돈을 그냥 교회에 내라고 하지만…

민수기 14장을 계속 읽어 내러 가시면

십일조로 드릴 것을 돈으로 바꾸어 무엇을 사야하는지 기록되어 있어요

교회 다니시면서 이 성경 구절 처음 본다고 말씀하시면 안되요

(24-26절)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돈으로 바꾼 십일조로 살 수 있는 항목을 다시 읽어 보세요

당연히 소와 양을 다시 구입해도 되지요

그런데 놀라운 단어가 나옵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사도 되요

독주?? 십일조로 독주를 사서 함께 마셔랴????

누가 교회 다니면 술을 먹지 말라고 가르쳤지요?

성경은 포도주나 독주도 괜찮다잖아요

저를 이단이라고 말씀하시면 안되요

제 말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심지어 십일조 낼 돈으로 말이죠

뿐만 아니라 마음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도 된다고 분명히 기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십일조로 구입한 것들을 성도들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지요

먹고 마시는 친교시간 아닌가요?

십일조를 교회 내고 예배시간 마쳤다고 친교시간 없이 집에 가버리는 사람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사람이며 예수님의 모형인 성전을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아요

십일조로 레위인들과 어려운 이웃 돕기로 쓰이는 것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나 전도사님들은 레위인이 아니지요

그래도 그렇다고 칩시다

교회의 십일조 대부분이 우선순위로 교회 유지를 위해 쓰거나 이웃 돕기에 사용되는 것도 이 성경 구절과는 순서가 바뀐거지요

제일 우선 순위는 성도의 먹고 마심의 친교를 위해 쓰여야 하는거죠

29절과 29절을 보시면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레위인들과 고아와 과부들에게 풍성히 제공하기위해 삼년마다 십일조를 그들을 위해 사용하면 복을 주신다고 기록하셨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모든 구약의 모형과 그림자들이 완성된 오늘날에도 이런 구약의 율법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의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요

물론 구약의 구절들을 여기저기 인용해서 편리하게 써먹으면 더더욱 안되지요

구약의 성전과 십일조를 통해서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 하는 사실은

십일조를 냈다는 사실 하나로 의무를 다 했다는 생각은 잘못 되었다는 것이지요

십일조는 먼저 성도와 함께 먹고 마시고 그 다음에 이웃(큰 의미로-레위인 고아 과부 포함)을 돕는것도 빠져서는 안되죠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서 교회가 온라인과 비대면으로 진행 된다고 해도 성도의 친교가 없다면 안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성도들이 예수님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예요

천지창조 때부터 남자와 아내가 한 몸이 되라고 하셨잖아요

사람이 결혼해서 하나가 되라는 뜻이 아니라

남자인 예수님과 아내인 성도들이 한 몸이 되라는 뜻이지요

예수님과 교회(성도들)가 한 몸이라는거지요

이 사실은 인터넷 교회든 다른 어떤 형태의 교회든 절대로 변헤서는 안되는 거죠

그러면 인터넷상의 비대면 교회에서의 성도의 친교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현제 각 교회에서하는 소규모 모임의 구역 모임이나 가정 모임, 순 모임, 셀 모임, 목장 모임 이런 작은 모임들처럼 몇몇 식구들의 모임이 있지요

모임의 목적이 친교이니까 먹고 마시고 삶을 나누는 것이죠

물론 먹고 마시는데 지도자나 인도자는 필요가 없고 무엇을 먹고 마실지는 이미 성경에서 원하는데로 하라고 하셨지요

이때 지도자가 개입되면 우리 교단에서는 이건 안된다 저건 안된다고 하겠지만요…

예배는 각자 상황에 맞추어서 인터넷으로 드렸으니 성도들의 모임은 친교 그 자체이고 이것도 예배의 연장 선에 있는거죠

물론 우리의 삶 자체가 모두 예배의 연장선이니까요

이쯤되면 누군가가 “어떤 목사님, 전도사님 혹은 지도자를 모셔야 하죠?”라고 질문 하실것 같네요

인도자나 지도가가 필요 없다니까요!

우리에게 말씀이 있고 성령님이 계시니까요

두 세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이 그 가운데 계시겠다고 약속했잖아요

두려워 하실것 없어요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믿으시면 되요

만일 여기서 어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 혹은 성경의 전문가같은 지도자같은 사람을 모신다면 그 모임은 또 다시 그 사람의 신학의 성향에 따라 그 모임이 변하겠지요

예를들면 순복음교 출신이면 방언하라고 하고 안수도 해줄꺼구

장로교 출신이면 장로교식의 방법으로 이끌고 가겠지요

결국 기독교의 교파와 교단이 갈라지듯이 언젠가 모두 또 지금처럼 갈려지겠지요

서로 자기들의 신학이 옳다고 하면서요

그러다가 모임이 커지면 각 가정들에서 모이는 것이 부담이 될꺼구

그러면 모이는 장소를 빌려야하고 그것은 개척교회로 발전할꺼구

모든건 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그 지도자의 생계도 그 모임이 책임져야 하겠죠

그러면 지도자가 속한 교단이 들이 닥쳐서 그 모임을 인수하죠

교단에 안들어 가면 이단으로 취급해 버릴테니까요

그러다가 또 다른 코로나가 터지면 그 모임은 사라지겠죠?

인생이 돌고 돌듯이 교회도 그렇게 돌고 돌겠지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 날 수 밖에 없는가하면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을 믿지 못해셔 그런 거예요

사람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속해 있고 자기들의 배운 신학으로 사람들을 인도해요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성령을 부인하는건 아니지요

다만 자기들이 원하는 목표, 교단과 교파로 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이용하겠지요

그러나 성령님만을 의지하시면 성령님은 예수님께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시기 때문이죠

물론 기성교회 사람들은 지도자 없이 성령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위험하다고 하겠지요

그것이 개신교가 케톨릭화 되어 가는 과정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신들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신의 말을 들으려고 용한 무당에게 점치러 가서 그 무당이 해주는 말을 믿잖아요

기독교인들도 자기 속에 계시는 살아 계신 성령님은 믿지 않고

전문가로부터 기도를 받고 안수를 받고 그들이 하는 말을 믿으려고 해요

기독교가 무당화 되어 가는 거죠

방언하고 통역한다고하면 어떤 교인들은100% 신뢰하잖아요

그 이유는 교회를 아무리 다녀도 머리 속에서 무당의 때가 벗겨지지 않아서 그런 거지요

근본적인 이유는 ‘주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믿는지 못한다는 뜻이죠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믿으시면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예수님께 인도하시고 모든것을 해결하십니다

‘주예수’를 믿지 않고 ‘주나’를 믿으니까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믿지 않고

예수를 믿는 자기 자신인 ‘나’를 믿는거죠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에게 인생을 맡기기가 무척 불안 한건 당연하죠

이러다 잘못되면 어떻하나 하구요

걱정 마세요 잘못 되어요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니까요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인님을 믿으세요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사람인 성도가 교회이고 성도들의 모임이 살아 있는 주님의 지체인 교회잖아요

그걸 믿으셔야 해요


인터넷 위에 펼쳐지는 예배가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지체로써의 성도의 먹고 마심의 친교 모임이 있어야 해요

성도의 친교가 없으면 예배는 형식이 되고 개인적인 종교의식이 되어 개인적인 영적 만족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가상 예배가 발달하여 TV스크린이나 콤퓨터 모니터, 혹은 휴대 전화를 통해서 설교를 듣고 예배를 드린다 해도

성도들의 얼굴과 얼굴로써의 만남이 없으면 온전한 예배가 될 수는 없는 거죠

참된 예배는 성도들과 힘께 가능한 일이니까요

혼자 예배드리는것을 원하시면

기독교 보다는 불교 쪽으로 가시는것이 좋겠지요


성도들의 만남 속에서 각 개인들은 주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치유할 수 있지요

전문가들이 성도를 치유하는것이 아니라

성도가 성도를 치유하는거죠

성령님의 도움과 힘으로 말입니다

성도의 작은 모임은 다른 성도의 모임과 함께 주님 안에서 서로를 돕고 서로를 세워주는 역할을 하지요

주님의 한 몸, 한 지체 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각자 주님께서 주신 각 분야에서 다른 성도를 도울 수 있지요

모두가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소명을 받은자이니까요

이렇게 될때 로마서 1:6절 말씀이 현실이 되잖아요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자니라

특별히 은혜를 받은 사람이 신학교를 가는 소명보다는 우리가 모두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받은 은혜의 양 만큼 말씀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 의지하면서 말씀에 관심을 갖으면 되지요

성경에 대해 박사가 된다고 구원 받는것 아니잖아요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가 있어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사람 많지 않지요

아마 박사학위를 주인으로 믿는 사람이 더 많을껄요

우리 모두가 자신이 있는 그 상황 속에서 복음(예수님)을 알고 그것에 감사하며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그 풍성함을 이웃에게 삶의 나눔으로 인해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거잖아요

어렵지 않아요

나눔의 삶을 살면 되니까요

꼭 아프리카까지 가서 나누실 필요 없어요

물론 가고 싶으시면 가셔도 되요

아프리카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시면 되요

그러나 모두가 그럴 수 없지요

그분을 아프리카로 보내시는 주님이 우리를 지금 이곳으로 보내 주셨잖아요

지금 이 상황, 이 현실에서 받은 것, 가진 것, 아는 것을 나누시면 되요

복음에 대한 깨달음과 지식을 나누면 다른 성도들의 영적 시야가 많이 넓어지겠지요

자신의 죄를 용서 받은 것도 나눔을 하면 좋지요

어떻게요?

‘나는 이런 용서를 받았습니다’하고 간증 하는것보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소서”

서로의 죄를 말없이 생색내지 말고 용서 해주시면 되지요

어느 교회를 다니시든, 인터넷 교회를 다니시든, 비대면 예배를 드리시든 간에 성도들간의 친교와 나눔이 없으면 아무 의미없는 거지요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한 몸, 한 지체이기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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