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안 vs 예수님의 밖
- KIMMSN
- 2023년 7월 4일
- 4분 분량
'예수님 안'인가 혹은 '예수님 밖'인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합니다
세상에는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과 밖에 사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 밖에 사는 사람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을까요?
혹은 예수님 안에 살다가 예수님 밖으로 나갈 수는 있을까요?
교회를 평생 다녀도 혹은 순교를 한다해도 예수님 밖에서 안으로 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있느냐 혹은 예수님 밖에 있냐가 결정되는 것은 천지가 창조 되기전에 이미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들을 결정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직 태어 나지 않은 먼 미래에 태어날 사람까지도 말입니다
그렇게 아들로 작정된 사람이 예수 안에서 태어나서 영원히 예수 안에서 살게 됩니다
태어난 환경이 기독교 환경이 아니어서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다가도
작정된 사람은 복음을 듣고 다 믿는다고 사도행전에 나오잖아요
우리가 선교나 전도를 하는 이유도 그런 사람을 찿으러 가는것이죠
예수님이 잃어 버린 양을 찿으러 오신것 같이 말이죠
작정되지 않은 사람을 찿아가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예수님 안에 넣는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작정 되어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방황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들이 있지요
예수님을 만나 보고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
십자가를 붙들려고 애쓰는 사람
뭔가를 경험으로 확인하고 싶은 사람
예수님 밖에 엤는 사람은 이런 마음 조차 들지 않지요
물론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눈이 가리워져 있거나 교회에서 상처가 많은 사람이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자처하며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에수님 안에서 작정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잃어 버린 양을 찿으러 오셨으니까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 혼돈하는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믿음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오해죠
잘못 가르침을 받아서 그렇게 오해를 하는겁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우리의 믿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예수님 밖에 나가야만 가능합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예수님을 자신의 종교적 믿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예수님이 믿음 그 자체가 됩니다
내가 믿는것이 아니고 내가 믿음을 소유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이란 믿음 그 자체 안에 있는거죠
마치 배 안에서는 그 배의 외모를 바라 볼수가 없는것과 같습니다
배 밖으로 떨어져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배를 쳐다보고 살려 달라고 소리 칠때
그는 배 밖에 있기 때문에 배를 구조의 대상으로 바라 볼 수 있지요
예수님 안의 개념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일은
에수님의 사진을 벽에 걸고 예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어서 서로 교감을 하는 상태애서는
예수님의 사진이나 형상을 봐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예수님이과 멀리 떨어져 있을때 그때는 예수님의 사진을 보며 그리워 해야죠
예를들면 아내가 남편과 서로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보며 남편이 뺨에 뽀뽀까지 해주고 있는데 아내는 남편 어깨 뒤로 벽에 걸리 남편의 사진을 보며 남편을 그리워한다?
코 앞에 남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한 드라마같지 않습니까?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의 사진이나 형상을 보며 그리워 한다면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계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지도 만들지도 말라고 하신거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어떤 조각이나 그림도 우상이 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개념을 이해 못하면 생기는 일이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예수님께 혹은 하나님께 뭔가를 드려야만 되는 사람 (기도,헌금,십일조, 정성,예배,혹은 영광 등등) 이런 사람은 불교나 이슬람 종교를 믿는 사람과 똑같은 성향을 갖고 있는거예요
무속 신앙까지도 사람이 신에게 뭔가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뭔가 드려서 갚으심을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 주고 받고, 갚을 수 있다면 성경의 중신 주제인 예수님의 은혜라는 개념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남편이 공휴일에 오랜만에 아내를 위해 멋진 점심을 만들었습니다
큰 바가지에 산나물 잔뜩 넣고 산나물 비빔밥을 만들어 숟가락 두개를 비빔밥이 가득한 바가지에 꼿아 넣고 아내에게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비빔밥을 작은 공기에 조금 덜어 넣고는 그 작은 공기에 든 비빔밥을 남편에게 드리면서 지난번에 빗진 것을 갚는것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의아해하지 않겠습니까?
남편이 직접 아내를 위해서 만든 비빔밥인데…
이 정신없는 아내의 마음 속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요?
(예가 좋지 않아서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네요)
예수님 밖에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뭔가를 드리려는 종교적 행위를 하는거죠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이런사람은 하나님이 주인이고 자신은 종이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죠
예수님이 주인임을 믿지 않고 자신이 주인임을 믿는사람이지요
아마 이런 사람은 기도드릴때 ‘주님!’ 하고 부리지 않고 ‘이봐 당신!’ 하면서 기도할것 같은데요
예수님 안에서는 주고 받는 개념은 없습니다
다만 받은 은혜애 대한 감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 있지만 교회를 다니며 배우고 듣는것이 예수 밖의 사람들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매우 혼돈스러운 겁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거나 혹은 우리가 믿어서 되는것이 아니라
믿음이란 영역 안으로 들어 와 있어야 합니다
그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합니다
그 믿음의 영역이 바로 예수님 안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예수님의 종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나는 누구의 종인가?에 대답하면 됩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의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사람이 종의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종은 자신의 소유가 인정 되지 않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묘비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종”, “예수님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한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사랑한 종”이라고 써야합니다
종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래 전 부흥회 선전을 보면 ‘능력의 종 XX목사’하고 선전했죠
종이 주인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주인의 이름이 아닌 자기 이름을 앞세우면 주인 눈 밖에 나서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멕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 작전을 지휘하고 승리했다로 멕아더 장군 혼자 인천에 왔습니까?
수많은 군사들이 인천에 상륙했지만 그들의 이름은 멕아더 장군 한 사람 안에 다 포함 되어 버리고 멕아더 장군 외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잊혀져 버립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의 유익이 무엇인가?
종의 개념을 이해하신다면 ‘자신의 유익’이란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예수 믿고 복 받아 잘 살게 된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뜻이죠
자기의 유익을 생가가는 사람들은 ‘예수’는 믿어도 ‘주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유익을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기 자신을 믿는거죠
‘주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삼고 자신은 그의 이름없는 종이란 것을 믿고 인정하고 고뱍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 안에 있으면 종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주인이 책임지고 데려갑니다
반면에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 관계없이 자기 주인인 사탄을 따라 지옥에 갑니다
이것을 로마서 8:1에서
예수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두 강도가 등장 합니다
십자가에 두 강도가 똑같이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을 당하지만
한 사람은 구원받고 다른 한사람은 지옥갑니다
천국을 가는 강도가 천국 가기로 결정된 것은
십자가 위애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처음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들로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강도짓하다가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라 천국으로 가는 겁니다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기로 되어 있었던 사람이고 함께 천국에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 천국 가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천국 갈 팔자지요
이런 방법이 못 마땅하셔서 지옥가시고 싶으면 예수님께 호적을 파 달라고 요청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주님이 호적에서 안 파내실 수도 있어요
우리는 에수님 안에서 함께 죽고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을 수도 없고 정죄함을 받지도 않습니다
에덴동산 식으로 표현하면
선악과를 먹고 정녕 죽어야하는 우리가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것이죠
우리가 언제 생명나무 실과를 먹었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하늘에서 내려 온 떡인 예수님을 먹었지요
그런 기억이 없어도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순절 날을 기점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허락도 없이 들어 오셔서 성도와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성령님 안에, 예수님 안에 사는 겁니다 영원히 …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상테로 예수님 안에서 태어 난 것이며
잠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십자가의 언약을 몸소 체험하기 위한 ‘언약체험학습’을 위해 잠시 지구에 태어 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향인 영원한 천국인 예수님 안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현실은 예수님 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짧은 일장춘뭉과 같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어느날 뒤를 돌아 보니 환갑이 훨씬 지나 버린것처럼 말입니다
사진의 한 컷과 같은 순간적인 시간이죠
세상의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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