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가 본 가인과 아벨의 사건
- KIMMSN
- 2023년 7월 23일
- 9분 분량
성경에서 아담의 아내 이름이 하와라고 나옵니다
영어 성경은 ‘이브’라고 나오지요
“And Adam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창3:20 KJV)
하와와 이브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같은 이름이죠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와라고 되어 있지만 성경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히브리어가 헬라어로 라틴어로 그리고 영어로 번역 되면서 발음 때문에 이브가 되었지요
저는 습관상 그냥 이브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관점에서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보면 어떤 모습과 의미로 생각이 될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중심으로 어떤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가에 촛점을 두고 생각해 왔었죠
이번에는 아담과 이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에덴을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는 무슨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을까요?
그야 당연히 나중에 당사들에게 직접 물어 보면 알 수 있지만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쳐 봅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의 추억을 영원히 잊지 못했을 겁니다
에덴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겠죠
에덴이 회복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는 약속된 여자의 후손이 오기를 엄청 기다렸을꺼예요
에덴을 쫓겨 난 후 이브가 임신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때 아마 그들은 드디어 여자의 후손이 오는 줄 알고 기대가 엄청났을 겁니다
뱀에 대한 복수와 에덴을 회복하게 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말이죠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에서의 수 많은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있겠지요
그 중에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사건 아닐까요?
선악과를 먹은 직 후 모든 것은 완전히 변해 버렸잖아요
그 중 하나는 자신들이 서로 벗은 것을 수치로 생각한 거죠
눈이 밝아져서 스스로 깨달았다기 보다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벗고 있음이 수치라는 것을 알려 준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누가 너희의 벗었음을 고했느냐고 말씀하셨잖아요
아담과 이브는 창조 될 때 옷이 없이 창조가 되었죠
마치 갓난 아기가 태어날때 옷을 입지 않고 태어난 것같이 말이죠
그러나 아기가 자라면서 주위 사람으로부터 벗은 것이 수치라는 개념을 받아 드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평생 옷을 입고 살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뱀은 아담과 이브에게 벗은것이 수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불어 넣어 주었지요
그로인해 남의 수치를 보는 눈이 열린 것이죠
선과 악을 안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왜 아담과 이브는 벗었나요?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으니까요
뱀에 의하면 수치를 만든 장본인은 하나님이란 거죠
뱀과 뱀의 배후 세력인 사탄의 공격 대상은 바로 하나님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그 배후 세력을 심판 하시려는 거죠
그렇다면 오실 여자의 후손은 뱀과 그 배후 세력을 심판 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하겠죠?
일반적인 천사 정도로도 그 일은 감당하지 못하고 더 강한 분이어야 하지요
뱀과 그 배후 세력을 심판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지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이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담과 이브가 생각 했을까요?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에덴동산에 살 자격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처음부터 자격이 있어서 에덴동산에 살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 와서 살게 된 거니까 에덴을 쫓겨나는 이유는 자격이 아닌 다른 이유이어야 하죠
성경을 보시면;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라고 하십니다
동산 중앙에 심겨진 생명나무를 따서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죠
죄 문제를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죠
그래서 그들은 죽고싶지 않아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려고 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이브는 창조 된 후로 한번도 사람이 죽는 것을 보지 못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무섭거나 안죽으려고 발버둥치는 우리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 내신 이유는 그들이 선악과를 먹듯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으로 문제의 해결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 거죠
만일 그들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 버리면 약속된 여자의 후손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가 아는 표현으로 바꾸면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언약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 없어진다는 거죠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문제 아닌가요?
우리의 구원은 얼마나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헌신과 충성을 하는가에 달린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공짜의 선물로 구원을 주시는 거니까요
그래서 로마서에서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잖아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는 행위로 영생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패쇄하고 아담과 이브를 아예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신거죠
에덴동산까지 사라져 버렸으니 사람에게는 생명나무를 따먹을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어져 버린거죠
다시 말하면 사람쪽에서는 구원을 얻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죠
생명나무의 실과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버렸으니까요
이제 아담과 이브와 그 후손들은 약속된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것만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 된거죠
어느날 이브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자신의 뱃속에 아기를 가진 이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수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제 생각엔 ‘이 아기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을것 같아요
아담과 이브는 자신의 아들에 의해 회복 될 에덴의 꿈도 꾸었겠지요
얼마후 아이가 태어났고 그를 가인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죠
가인이 태어 났을때 아담과 이브는 드디어 여자의 후손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하겠죠?
성경을 아는 우리는 그로부터 약 2000년 후에 이스라엘에서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이 나신 것을 알지만
아담과 이브가 2000년 후에 오실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을 못했겠죠
제 생각이긴하지만 이브는 자신이 여자이고 그리고 임신하였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이 이제 오는 것으로 확신했을 것이라고 생각 했을꺼예요
가인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는 역사적인 첫번째 사람이니까요
가인은 아마도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을 겁니다
뱀과 그 배후 세력을 심판 할 영웅이 되어야 하니까요
아담과 이브는 가인이 자라나서 곧 뱀에게 복수 할 사람이란 것을 믿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자신이 망쳐놓은 세상을 곧 회복 할 사람이라고도 생각했겠지요
어쩌면 가인은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의 신임을 받을 행동을 많이 했을것이라 상상됩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영웅이 되어야 할 인물이었으니까요
아담과 이브에게는 이제 둘째 아들인 아벨도 태어났죠
어느날 가인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 준비를 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런 가인의 모습을 보며 기대에 부풀지 않았을까요?
농부인 가인은 자신의 밭에서 가장 좋은 곡식을 골라 하나님께 드리려 했겠지요
그 모습을 보고있는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으시면 가인이 여자의 후손임을 인정 받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가인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하고 뱀의 배후 세력을 몽땅 처단 할 것으로 기대 헀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과 그가 드린 제물을 모두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을 받으시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인뿐 아니라 아담과 이브 역시 엄청난 충격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가인은 분명히 아담과 이브가 낳은 첫 여자의 후손이니까요
아마도 모두가 정신적인 파산 상태였을 겁니다
이 사실을 지켜본 동생 아벨은 자신이 여자의 후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것이 당연했겠죠
그래서 그는 가인처럼 자신도 제물을 준비 했지요
어쩌면 아담과 이브가 아벨에게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라고 권했을지도 모르지요
아벨이 여자의 후손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말이죠
아벨은 양치는 자이기에 양떼 중에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첫새끼과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지요
하나님은 아벨과 그가 드린 제물을 모두 받으셨습니다
가인때문에 슬픔에 잠겼던 아담과 이브는 새로운 희망과 살 길이 열린 셈이죠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가인이 아니라 아벨임이 증명 된 것이니까요
이제 모든 희망을 아벨에게 걸수 있잖아요
아벨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절망적인 죽음에서 생명을 안겨 줄 약속의 주인공임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가인이 아벨을 쳐서 죽여 버렸습니다
아벨의 죽음은 가인에게서 받은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이 아담과 이브를 흔들어 놓았을 겁니다
세상을 구할 여자의 후손이 사라졌고 세상이 회복 될 희망도 사라진거니까요
아마 아담과 이브는 엄청 헷갈렸을 겁니다
아벨이 분명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인데 죽어 버렸으니까요
아담과 이브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거죠
얼마나 기가막혔을까요?
아마도 아벨이 죽은 날 아담과 이브는 또 다시 엄청 고민에 빠졌을겁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죽은 사실에 대해서 말이죠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다 받으셨는데 어떻게 아벨이 죽는 일이 생기는 걸까요?
그들은 아마 여자의 후손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 했을겁니다
아담과 이브는 아벨의 죽음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가 없었을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죽음을 통해서 오실 여자의 후손을 설명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아벨과 그의 제물을 택하셨습니다
약속된 여자의 후손이 오시면 아벨처럼 제물과 제물을 드리는 사람 모두를 받으시고 아벨처럼 죽는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거죠
여자의 후손이 와서 죽는 그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겁니다
이것은 감추어진 십자가의 비밀이니까요
여자의 후손이 와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그 죽음을 통해 생명나무가 되시고 그 생명나무의 실과를 선물로, 은혜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감추어진 십자가의 비밀인 거죠
이 십자가의 도를 아담과 이브뿐 아니라 2000년 후 이스라엘 백성들도 믿음의 눈이 없이는 보아도 알지를 못했던 거죠
구원의 비밀이니까요
아벨은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함으로 여자의 후손이 겪을 일을 먼저 경험하였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의 작은 예표가 된 거죠
아벨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설명하시고 싶으셨던 것은
제물을 드린 사람은 자신이 산 제물이 되어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산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뱀의 머리가 상하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며, 뱀의 배후 세력을 심판 하시는 방식 전체를 아벨의 죽음은 전부 나타내지 못했지만 여자의 후손이 와서 죽는 죽음은 보여 준 거죠
약속된 여자의 후손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는 방식은 아마도 아담과 이브는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이 손을 들어 생명 나무의 열매를 스스로 따 먹고 영생을 얻는 방법이 아니고
아벨의 죽음과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 은혜로 생명나무의 과실이 공짜로 주어지는 비밀을 암시하신 거죠
영생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는 사람의 행위에 달린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의 죽음으로 인해 예수님 자신이 생명나무가 되어 그 은혜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나무의 과실을 거져 주셔서 그것을 은혜로 받아 먹는자가 영생을 얻는 거죠
아벨은 사람이기에 죽음에서 부활 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아벨은 오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 죽음의 예표, 모형으로 죽는 배역을 담당한 거죠
아벨의 죽음으로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그 제물까지 모두 하나님이 받으시는 십자가의 원리를 아벨의 배역을 통해 설명하신 거죠
이것이 구약의 제사제도의 원형 아닙니까?
동물을 죽여 제물로 드렸으니 나는 세상에서 죄가 용서 되고 복을 받는다는 식은 성경 어디에도 없지요
동물을 죽여 제물로 드렸다고 사람의 죄의 문제가 해결 되는것도 아니고 구원을 얻는것도 아니니까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충성과 헌신과 열심을 드려서 그 댓가로 내가 어떤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독교의 기초를 전혀 이해 못하는 사람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11:35에서
“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라고 맣씀하시잖아요
기독교에서 하나님께 드림은 자신을 드리는 것이지 내가 가진것을 드리는 방식은 아니죠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께 드려서 갚음을 받는것이 아니라
아벨처럼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로마서 12장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예배란 자신을 아벨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드리는 산제물이 되는 것이죠
그럼 영적 예배를 드리려면 죽어야 합니까?
죽어야 한다면 우리의 생명이 하나이니까 일생에 한번 밖에 못 드리잖아요
그렇죠! 한번만 드리고 죽으면 되죠
아벨처럼, 예수님처럼 말이죠
그러나 영적예배를 드린다고 내가 자신을 죽이면 안되요
아벨처럼 예수님처럼 악한자에게 죽임을 당해야해요
그러면 악한자 앞에 가서 죽여 달라고 부탁해야 하나요?
아니죠…그 악한자, 죄인이 바로 우리 자신인걸요
그래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때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로마서 5:8절에서 말씀하시잖아요
우리가 악한자, 죄인이라면 우리는 영적예배를 드릴 수 없지요
우리가 아벨과 에수님을 죽이는 사람 입장인데 무슨 영적예배를 드릴 수 있나요?
가인인 우리가 어떻게 영적예배를 드리려고 교회를 갑니까?
내가 영적 예배를 드리고 싶을 때마다 교회에 간다면 그건 불교가 되지요
불교는 자신이 불공을 드리고 싶을때 가서 예배 드리면 복을 받아서 아들도 낳고, 좋은 학교도 입학하고, 좋은 직장도 가고, 돈도 잘 번다잖아요
그런데 기독교는 아벨처럼 예배 드리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니까요
아벨이 자신이 죽기 위해 계획하고 자신을 산제물로 드렸나요?
죽기를 계획한것이 아니라 가인에게 맞아 죽었지요
악한자들에게 맞아 죽어서 산제물이 된거 잖아요
예수님처럼 말이죠
지금 저는 우리가 매주 교회가서 정기적으로 자신이 산제물이 되는 영적예배를 드릴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예요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주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어야 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가인이죠
내가 가인인데 내가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거죠
만일 내가 가인이 아니라 해도, 내가 드리고 싶을때 마다 악인이 날 죽여 주어야 하니까 그것도 말이 안되잖아요
죽는 날을 시간과 때를 매주 주일 날로 정해서 산제물이 될 수 없다니까요 그러면 언제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풀 사람이 바로 약속된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인 거죠
약속된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이 오셔서 이 세상 역사 속에서 딱 한번, 단번에 십자가에서 죽어 영원한 산제물이 되십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매일 드리는 동물의 제물을 예수님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림으로 한번에 모든 제사제도를 이루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어졌어요
히브리서 7:27을 보시면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라고 기록하지요
히브리서 10장에 여러 말씀이 나옵니다
(10)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산제물로 자신을 드림으로 모든 제사제도를 완결 시키셨지요
우리는 더 이상 제물을 드리는 않아도 되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며 피를 흘려 죽으실때 우리가 주님과 합하여 함께 산제물이 되어 죽었으니까요
예수님이 단번에 영원한 제물로 드려질때 우리도 산제물로 이미 드려졌어요
그것을 믿는 믿음이 바로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가 되는 거죠
로마서 6장이 우리의 죽음에 재해서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때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함께 죽었지요
또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리심을 받고 이미 거룩함을 받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영적예배는 주님과 함께 단번에 이미 드려졌습니다
예수님이 또 다시 십자가에서 죽을 필요가 없듯이 우리도 또 다시 산제물이 되어 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이미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우리 자신을 믿음으로 재 확인하는 것이 믿음으로 드리는 영적예배가 되니까요
그런 믿음의 영적인 예배는 정해진 장소와 정해진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믿음의 마음으로 드려 질 수 있어요
예수님 안에서 함께 산제물이 되어 드려졌다는 우리 자신을 마음으로 믿고 확인할때 우리의 눈 앞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밝히 볼수 있지요
꿈이나 환상을 보는게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의 눈,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거죠
이것을 갈라디아 3장1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라고 말이죠
영적예배를 드린다고 손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방언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눈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보지 못하면 영적예배가 아니고 오히려 율법의 행위와 가식과 체면과 위선적인 꾀임일 수가 있다는 말이죠
영적예배는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며 내 자신이 산제물로 주님과 함께 드려진 것을 깨닫는 거죠
아벨의 제물을 보세요
아벨이 제물을 드리기 위해 첫 양새끼를 죽였잖아요
아벨보다 먼저 양이 죽어 피를 흘렸지요
제물이 된 어린양의 죽음이 죄의 문제 (뱀의 머리를 상하게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요
제물을 드리는 아벨이 죽어야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죽음 안에서 생명이 나오게 되는 거죠
이것은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 것의 모형이며 예표로 하나님께서 아벨의 죽음으로 아담과 이브에게 설명해 보여 주시는거예요
죽음 속에서 생명이 나온다는 그 모형이 바로 구약의 제사제도 입니다
동물을 죽여 제물을 드리는 제사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오실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의 피흘림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거죠
그것을 이해 못한 구약 사람들은 동물의 피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오해하며 때마다 절기마다 동물을 제물로 잡아서 드렸지요
하나님은 동물 죽인 피 냄새와 고기 냄새에 질렸다고 하셨잖아요
왜냐하면 약속된 여자의 후손인 에수님의 죄 용서의 의미를 모르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 때문이죠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성전 문턱만 드나들면
‘누가 성전문을 닫을 사람 없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같은 이유인거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를 설명하기 위한 예표로 구약의 제사제도가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제도와 법과 절기와 날들은 예수님의 예표이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기록이니까요(요한복음 5:39)
우리는 이미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산제물이 되어 영적 예배를 드렸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 안에서 함께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도인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지요
그러니 이 세상에서의 죽음도 없어요
이미 죽고 살리심을 받았으니까요
물론 에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죽고 또 영원한 죽음의 심판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겠지요
우리는 다만 우리의 육체만 썩고 새로운 몸으로, 하늘의 것으로 다시 계속 영원히 살아가는 거죠 예수님 안에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이미 죽고 살리심을 받은 우리는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님이신 거죠
그럼 나는 어디있죠?
나는 없어요
다만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있지요
그 ’우리’가 한 성도이며 한 성전이죠
예수님의 신부이며 예수님과 한 몸인 거룩한 성도이죠
이 세상의 역사가 그치면 예수님이 머리이고 우리는 그의 지체가 되는 한 몸, 한 성전으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한 몸, 한 성전이 되어 영원히 사는거죠
이 엄청난 복음의 내용을 아담과 이브는 얼마나 이해를 했을까요?
아담과 이브는 죽은 아벨을 대신해서 셋을 낳았죠
그들은 셋을 보면서 하나님이 셋을 여자의 후손으로 받아 주시길 바랬을까요?
가인과 아벨에 대해 했던 기대처럼?
아담과 이브는 셋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또 그 자손이 자식을 낳는것을 보면서 800년을 더 살았죠
여자의 후손이 오는것을 기대하면서요…
세상이 점점 타락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죠
하나님이 진노가 드디어 노아 홍수 심판이 이를 때까지도 여자의 후손은 오질 않았지요
아담과 이브는 노아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아벨처럼 죽어야 한다는 것과
그 여자의 후손의 죽음을 통해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음을 마음 속에 새기며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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